1. 도입 질문
- 당신은 무신론자 입니까? 아니면 유신론자 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신론과 무신론 모두 믿음의 문제, 하지만 불신자들 대부분 유신론은 비과학적이고 무신론은 과학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둘 도 모두 믿음의 영역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신이 없다고 믿거나 신이 있다고 믿거나. 중요한 것은 그 믿음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 만약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피조물의 세계를 통해 창조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생명체의 설계도와 같은 DNA가 존재하는 것과 온 우주 만물가운데 아직까지 다른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 한 것 그리고 위험한(?) 우주 한 가운데 지구라는 별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성을 가지고 있는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창조자가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은 어렴풋하고 우리의 주관적인 해석과 관찰자의 오류등에 의해 왜곡되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 이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계시를 통해 주신 말씀으로 수 천년에 걸쳐 여러 저자들에 의해 작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에 대해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기도의 응답을 통해 그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기도의 대상과 기도의 내용이 존재하는데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따라서 그 기도가 응답되어 진다는 것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로 없다면 우리의 기도는 정신 승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겠지요.
- 성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연 믿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 지고,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전체 66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자 또한 시대 별로 다양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고, 시간 상으로는 창조부터 종말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이 성경이 역사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인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고대 문헌들과 비교해도 유사한 시대적 상황들을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성경을 통해 살펴 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통치자 : 시편 97편 1절을 통해 그 분이 온 땅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통치를 만물이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그가 창조하신 세계를 사랑하고 좋게 여기시고 그 모둔 필요한 것을 아시고 넉넉히 채워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불신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인데 왜 이 세상이 이 모양인지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인 계신데 왜? 라는 질문으로 꼬리를 물며 이 세상에 가득한 불의와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해 못 마땅해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잘 못이고 그 분의 부재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번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잘 못인지 혹은 인간의 잘 못은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언급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신데, 왜 굶어서 죽는 사람이 생길까요? 하나님이 안 주셔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분배의 문제가 결부 되어 있고 이 분배의 문제의 배후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좋은 것은 나의 의로 여기고 나쁜 것은 하나님의 잘못으로 여기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만약 무신론자들의 주장대로 이 세상의 불의와 불평이 하나님으로부터 초래된 것이라면 어떻게 지구에 사는 인류는 오늘도 안녕을 누리고 있을까요? 온 우주를 창조하신 그 분이 지구라는 별 하나 순삭시키는 것은 정말로 단순한 일 일텐데 말이죠. 오늘도 여전히 그분은 비를 내려 주시고 땅에서 양식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따라서 여전히 그분은 그 피조 세계를 사랑하고 계시고 인간이 그것을 받아 들이던 그렇지 않던 통치 하시고 운행해 나가시고 계십니다.
2) 의와 공평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공평하신 분이시다. 앞서 그분은 통치자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통치자의 통치 방식이 정의와 공평에 기초를 두고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행복하고 기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불의와 죄를 그냥 넘기시지 않으시고 그에 맞는 형벌을 내리시는 공의로운 재판관이시다. 그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시고 잘 못 판단하시지 않으시는 공평한 재판관이시다. 부유하다고 해서 그들에게 이로운 판단을 내리시지 않으시고 가난하다고 하여 그들의 편에서서 판단하시지도 않으신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토록 불의하고 불공평한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인데,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마귀 즉 사탄에게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닌 마귀의 통치아래 죄의 권세아래 온 인류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4과 죄란 무언인가? 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3) 모든 신들위에 뛰어나신 분
사실 이러한 부분들은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실 다른 신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들이 하나님이 있어야 할 위치에 다른 것들을 둠으로써 우상으로 섬기는 일 즉 만들어진 신이 있을 뿐, 실제로 다른 신들이 존재하여 하나님과 다투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다른 신들을 짓밟고 군림하시며 모든 신들중에 뛰어나신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외에 다른 신들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것을 싫어하시는 질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님과 맺은 언약, 혹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시고 이방 신들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진노하시고 혹은 질투하시는 모습을 나타내고 계시다. 그 만큰 사랑하시고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그 분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4) 모든 것을 아시는 분
시편 139편에서는 하나님을 모든 것을 아시는 분으로 찬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행동],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며[생각],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심[나의 모든 행위], 내 혀의 말[내가 하는 말], 앞뒤를 둘러싸시고 안수하심[보호자가 되시고 소유로 확정하심]. 나의 인생의 여정을 아시고 나의 행위와 생각과 내 입의 말들... 그리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는 관찰하시며 살피시는 분이시며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으로 묘사되어질 만큼 우리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다. 팬들이 아이돌을 좋아할 때 그 좋아하는 대상의 세세한 정보에까지 아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잘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를 살피시고 눈동자같이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5) 모든 곳에 계시는 분
하나님을 피해 숨을 곳은 없다. 왜냐하면 그 분은 어디에도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감찰 하시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육신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라 영으로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가운데 존재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그 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가 기쁨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기쁨을 아시고 우리가 죄악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의 죄를 다 알고 계신 분이시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의 낯을 피하여 숨을 수 없고, 마지막 심판날에도 모든 인류가 주를 보게 될 것이다.
6)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성경에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 심히 보기 좋았더라고 설명하고 있다. 달리 설명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피조 세계를 사랑하신 것이다. 이 사랑은 완전한 사랑으로 인간 세계에 잘 적용되는 이해 타산적 이거나 주고 받는 관계 중심의 사랑이 아니다. 그 분은 그 분 자체로 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거나 하실 필요가 없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우리와 교제 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더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다. 그 첫 번째 단추가 바로 순종이다. 순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과 축복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생 인류 대부분은 이 사랑을 알지 못 하고 느끼지 못 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분의 사랑안에 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출한 자녀가 집안에 있을 때 받는 따뜻한 사람과 채움을 경험할 수 없는 것처럼 인류는 하나님을 떠나 독자 생존의 노선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 사랑의 확증
인류의 불순종과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으시고 하나님은 인류가 이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그 사랑을 결코 내려 놓으신 적이 없으시다. 이는 단순히 말로나 감정으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나타난 사건을 통해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이다. 그 분은 이 땅에 성령으로 성육신하시고, 무죄하시지만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창조 이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셨으며, 성자 하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확장되고 있으며 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8) 당신은 현재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나요?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우리를 향해 프로포즈 하셨습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 들임으로써 우리는 그 분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우리의 영적 아버지를 두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길에 들어서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내주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그 분의 사랑 안에 거 할 때 우리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이전과 같이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둘 째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둘 째 사망은 우리의 육신의 사망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 이후에 우리의 모든 행위를 주님께 아뢰며 심판을 받게 되어 우리 죄와 그에 대한 결과로 둘 째 사망의 해를 받고 영원한 지옥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얘기하셨고, 죄용서함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누구든지 믿고 나아오면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 죄를 않고 죽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결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그 통치의 기초가 정의와 공평이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어디에도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오늘도 우리를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계시며 우리를 천국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분의 부르심 앞에 이제 당신이 선택해야 할 순간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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