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1일 월요일

[PBS] 시편 73편

 1. 관찰

1) 문단나누기

- 1문단 : 1~15 - 의인의 실족

- 2문단 : 16~28 - 의인의 회복

2) 문맥 및 분위기

- 전문맥 : -

- 후문맥 : -

- 분위기 : 악인의 형통함에 대해 거의 실족하여 괴로워 하던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악인의 끝이 멸망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복임을 다시 고백하게 된다. 

3) 본문 요약

시편 기자는 악의 형통함과 오만한 자들이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들이 강건하여지며 고난이 없고 재앙도 없음으로 말미암아 거의 실족하게 된다. 악인들은 거만하게 행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자신들의 형통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로 말미암아 괴로워하는 시편기자는 성소에 들어가며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깨닫고 자신이 넘어질 뻔한 것이 자신이 어리석고 지혜자를 알미 못 함으로 말미암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니님의 말씀을 교훈으로 받는 것이 복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한다. 

4) 본문 관찰

- 아삽 : "모으는 자",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해 모으셨다",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왔을 때 헤만, 에단과 함께 찬송하는 믹무를 맡았던 레위인(역대상 6:39;15:19). 아삽의 시(시편 50, 73-83)의 저자. 대하 29:30에 나오는 선견자 아삽과 동일 인물인 듯 함(느 12:46)

(1)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당대의 뛰어난 '노래하는 자(musician,singer)'로 평가 받고 있다. 아삽 역시,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기는 역사적인 순간에 등장하게 된다. 레위 사람의 '어른들'은 노래하는 자로 헤만, 아삽, 에단을 다윗에게 천거했다. (대상15:16~17)

(2)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찬양대를 이끄는 역할을 담당했다. (대상15:19;참조. 느12:46)

(3) 언약궤를 성막으로 들인 후, 다윗은 그 앞에서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감사 찬양을 하도록 했는데 아삽은 그 때 두목으로 발탁되었다. 아삽은 제금으로 찬양대를 인도하였는데, 그 찬양대의 구성은 비파와 수금이 합쳐서 9대, 나팔 2대 규모였다. 그 찬송하는 일은 날마다 계속되었다. (대상16:4~6,37)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 형제를 세워 위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 (대상16:7)

(4)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아삽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그는 가운데 위치한 헤만의 우편에서 그 직무를 수행하였다. (대상6:31~32,39)

(5)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다윗의 수하에서 왕을 돕던 '선견자'였다. (대상25:6;대하29:30)

(6)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언약궤를 들여놓던 때까지도 아삽은 헤만, 에단과 함께 찬송하는 일을 맡았다. 그 때의 찬양대 규모는 제금, 비파, 수금, 나팔 등의 악기가 동원된 120명의 거대한 오케스트라였다. (대하5:12)

(7) 아삽은 악기뿐만 아니라 작시의 소질이 뛰어났던 것 같다. 시편에는 그의 시가 12편이 수록되어 있다(시 50, 73~83편). 아삽의 이러한 소질이 다윗의 신임을 받았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고(대상16:7~36), 후대에 이르러서도 그의 '시'는 다윗의 시와 함께 여호와께 부르는 찬송으로 널리 권해졌다(대하29:30). 

그가 지은 시편에는 '마스길', '알다스헷', '영장', '현악', '여두둔의 법칙', '셀라', 소산님에돗', '깃딧' 등의 음악용어가 풍부하게 나타나있다.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로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저희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하니라 (대하29:30)


- 하나님 :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심

- 저자 : 거의 넘얼질 뻔 함. 걸음이 미끄러질 뻔함.

- 실족의 이유
a. 악인의 형통
b. 오만한 자를 질투
c.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음
d. 그 힘이 강건하여 짐

e.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재앙이 그들에게는 없음

- 악인의 특징
a. 교만이 그들의 목걸이
b. 강포가 그들의 옷
c. 살찜으로 그들의 눈이 솟아남
d. 그들의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많음
e. 능욕하며 악하게 말하며 높은 데서 거만하게 말하며
f. 그들의 입은 하늘을 대적하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 악인의 횡포
a.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심
b.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존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함
c.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 의인의 낙망

a.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됨.
b.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음

c. 내가 악인들같이 말했더라면 주의 자녀들에게 악을 행하였을 것이다(?)

-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 여기서 말하는 이는 앞에서 쭉 나열된 실족의 이유에 해당하는 악인들의 형통이 될 것이다.
- 생각한 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라 : 이해가 되지 않음.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이 의인의 눈에는 불합리해 보이고 심히 괴로움으로 다가옴.(세상만 바라볼 때...)

-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 하나님의 임재, 통치, 다스림 등. 그 분의 임재가운데 들어가 있는 상태임을 나타냄. 

- 그들의 종말을 깨달았나이다. : 세상가운데 그들의 현재 상태로 말미암아 고통 받던 시편 기자가 그들의 종말이 어떠함을 보고 그 마음의 답답함과 괴로움이 사라짐. 

- 그들의 종말
 a.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심

b.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함

c.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심

- 주님안에서 그들의 종말을 깨닫고 자신의 불평 불만을 깨달은 저자의 반응

a.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양심이 찔렸나이다

b. 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

- 깨닫게 해 주신 주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

a. 내가 항상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b.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심

c.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d.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

e.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 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함

f.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2. 해석

1) 의인의 실족

시편 기자는 성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거의 미끄러질 뻔, 실족할 뻔하는데 그것은 바로 악인의 형통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그들의 형통과 오만에 대해 질투심을 갖게 되고, 그들은 죽을 때에도 아무런 고통없이 평안히 죽으며, 그들의 힘은 더욱 강건하여 지고 여러 사람들에게 임하는 고난이나 재앙이 그들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형통을 발판삼아 더욱 교만하여 지고 강포를 행하며 살이찌고 재산은 더욱 늘어나며 거만히 말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들의 말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착취하며 지존자를 무시하고 대적하며 평안하며 재물이 더욱 불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 의인은 악인을 바라보며 관찰하고 있으며 그에게 있는 평안과 재물로 인해 그를 질투하고 있다. 그의 눈은 땅을 향하여 있고 하나님을 향하여 있지 아니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거의 실족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거의 할 뻔 한 것이지 완전히 실족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는 성소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2) 의인의 낙망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의인은 자신이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성결하게 한 것이 헛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종일 재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 것 처럼 삶이 매우 힘듦을 얘기하고 있다. 왜 그런가? 그건 바로 악인들이 득세하고 악인들의 형통함으로 말미암아 횡포를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럿은 외부적인 압제와 탄압이 힘들다기 보다 그들의 형통함을 바라봐야 하는 의인의 내면적 힘듦과 아픔일 가능성이 크다. 한 마디로 마음이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의 부조리를 보고 실망하고 하나님을 떠나가고 마음의 병을 얻는지 모르겠다. 우울증과 공항장애 그리고 강박장애 그리고 조울증 등등 말이다. 모든 것이 마음의 병이다. 마음의 힘듦이 해결되지 않을 때, 결국에 거의 실족하게 되고 실제로 실족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3) 의인의 회복
의인은 고백한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악인의 종말이 어떠한지 깨닫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악인들을 바라볼 때에는 미쳐 깨닫지 못 하였던 것들을 하나님의 통치와 임재 그리고 역사하심이 드러나는 성소에서 악인들의 멸망이 어떠함을 보게 된다. 의인은 세상가운데 그들의 형통함과 평안함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결코 내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두심을 보게 된다. 갑자기 황폐해 지고 놀랄 정도로 전멸함.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심. 그들의 형통함과 평안함은 영원한 것이 못 되며 잠시 잠깐 스쳐지나가는 것과 같음. 


4) 의인의 성찰

악인의 멸망을 보고 나서야 의인은 자신이 악인들의 형통함과 평안함을 보고 시기 질투하며 고통스러워 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낟. 시편 기자는 자신을 하나님앞에서 짐승같다고 얘기합니다. 지혜자 앞에서 한없이 무지하며 주의 법도와 그 길을 깨닫지 못 한 자신을 돌아보며 짐승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산란하며 자신의 양심이 찔렸다고 고백합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시기 질투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의 표현입니다. 우리도 세상가운데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그 때 마다 하나님의 부재와 심판에 대해서 고민하고 불평아닌 불평과 불만아닌 불만을 하나님앞에 늘어 놓게 됩니다. 지존자 앞에서 우리의 작음과 우리의 지혜 없음을 깨닫아야 합니다. 우리는 힘써 하나님앞에 나아가면 그분의 능하심을 바라보며 그 분 안에서 악인의 잠심잠깐의 형통함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5) 의인의 찬양

의인은 악인을 심판하시고 넘어지게 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찬양 합니다. 그것은 주를 가까이 하는 자에게 주께서 함께 하심으로 내가 평생에 주를 가까이 하고 주를 피난처로 삼으며 주의 행적을 널리 전파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자는 필경 넘어지며 망하게 됩니다. 세상가운데 하나님이 없는 것 같고 그런 상황과 시선으로 세상을 계속 바라볼 때 믿음은 떨어지게 되고 결국엔 하나님을 떠날 수 밖에 없습니다. 


3. 적용

1) 믿어야 할 것

- 악인의 형통은 오래 가지 못 하며 필경 망하게 된다.

- 세상만 바라볼 때 악인의 형통함으로 마음이 괴롭게 된다.

-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

- 그들의 성공과 부유함은 잠시 잠깐이며 영원한 것이 아니다.

-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영원한 가치이다.

- 하나님을 떠난 형통함과 부유함은 필경 망하게 되어 있다.

2) 회개할 것

- 나 또한 이 세상의 부조리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촉구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간구한 것. 믿고 기다리지 못 한 것

-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따라하려 하고 쫓아가려고 한 어리석음

3) 간구할 것

-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그분의 지혜와 능력을 닮아갈 수 있도록

- 악인들이 둘러 쌀 때 주께 피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 그들을 부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쌍히 여길 수 있는 마음 주시도록

4) 즉시 실행할 것

- 악인의 형통함과 평안함을 볼 때 내 마음을 돌아보고 믿음의 고백과 기도를 하자.

-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와 같이 주께서 내 삶에 행한 것들을 늘 간증하며 살아가자. to 주하, 예하, 대학부. 



2023년 7월 24일 월요일

[PBS] 디모데후서 4장 9절~22절

디모데 후서 4장

 

1. 관찰

1) 문단나누기

1문단 : 9~18 – 나를 문안하라

2문단 : 19~22 – 형제를 문안하라

 

2) 문맥 및 분위기
- 전문맥 : 데모데가 달려갈 길과 바울의 달려온 길

- 후문맥 : -

- 분위기 : 죽음을 앞둔 바울은 디모데에게 전도자의 사명을 맡기고 자기와 믿음의 형제들을 문안하기를 권면한다. 

 

3) 본문요약

그가 달려온 길의 마지막 여정에 함께한 자들이 많지 않고 오직 주님만이 함께 하셨으나, 바울은 믿음의 형제들에게 디모데가 오는 길에 문안하기를 당부한다. 

 

4) 본문 관찰

-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 바울과 함께 하는 동역자들이 없는 상황임을 알 수 있음. 

- 데마 :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음. 바울의 제자 였으나 바울이 두 번째 옥에 갇힐 때에 바울과 신앙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감. 이 전에 주님을 사랑하였지만, 변심함으로 세상을 더 사랑하는 자가 됨. (우리도 이렇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주의가 필요함)
- 그레스게 : 갈라디아 전도때 같이감. 

- 디도 : 달마디아

- 누가 : 바울과 같이 있음. 대필을 자주 해 준것으로 보임. 

- 마가 :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 마가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음. 혹은 마가가 바뀌었음.

- 두기고 : 에베소

- 드로아 가보 : 드로아 지역에 있는 가보(바울의 친구)

- 겉옷 : 그가 지금 춥고 힘든 상황임을 단적으로 드러냄. 다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없음.
           (겨울이 되기전에~)

- 책 : 성경책. 가죽종이에 쓴 것. 두고 두고 보기 위함. 

- 알렉산더 : 바울에게 해를 많이 입힘.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함. =>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무리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음.
- 내가 처음 변명할 때 : 로마의 재판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 할 때에

- 함께한 자들이 없음 : 바울과 함께 하지 않고 떠나감. 

- 허물을 돌리지 아니함 : 그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탓하지 않음.

- 사람들은 떠났지만 주님은 함께 하심 : 주께서 내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 ->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 <- 이를 위해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음.

- 18 절 : 복음을 위해 수고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건지신 것처럼 나를 모든 악한 일( 예를 들면 재판 받는 일) 에서 건져 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실 것임. -> 찬양으로 바뀜. 그에게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 브리스가와 아굴라 : 함께 텐트 만들었던 부부 동역자(로마-> 고린도)

- 오네시보로 : 바울을 찾아가서 위로함(내가 지금 위로할 사람은 누구?)

- 에라스도 : 바울과 같이 에베소에서 전도함. 디모데와 마게도냐에서 전도 함. 그 후 고린도로 돌아옴. 

- 드로비모 : 병들어서 밀레도에 둠. 

- 너는 겨울 전에( 옷과 책을 가지고 ) 어서 오라.

-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문안함- 로마에 있던 형제들

- 마지막 인사 :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2. 해석

 

1) 복음을 위해 주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바울에게는 많은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고 많은 사람이 떠나갔고 오직 주님만이 그의 곁에 서서 그의 힘이 되어 주고 계심을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오늘날의 언어로 볼 때 이러한 바울은 앗싸가 아닐까? 그의 인생의 말로는 인싸와는 거리가 멀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싸로 살아가기를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사람들의 인정과 주목을 받는 삶을 원하고 있다. 복음을 위해 살았지만 우리에게는 사람이 남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할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느냐 그렇지 않느냐 이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가 바꾸어 내가 주님과 함께 하고 있는 가 이것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다.

 

2) 바울은 한 명 한명 자기와 함께한 자들과 문안하는 형제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바울은 떠나간 자도 바울과 함께한 자들도 있다. 나는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를 문안하고 있는가? 문안해야 하는가? 복음의 편에 서있는 자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을 문안하고 위로하고 먹이고 재우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겠다. 세상에서의 인싸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인싸가 되어야 겠다. 혹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주님 기뻐하는 일이라면 하도록 하자. 

 

3)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이후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복음을 위하여 주님 나라를 위하여 이방인 선교를 위해 드렸고, 이제 자신이 전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고 자신을 구원해 준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감사함으로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어떻게 내 삶을 마무리 지을 것인가? 하나님의 영광은 없고 세상 영광으로 내 삶을 마무리 지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내 삶의 충만케 할 것인가 그것은 내가 주님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4) 바울의 사역 어디에서나 말씀을 대적하는 자들이 있었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러한 자들 중에 알렉산더를 주의하라고 얘기한다. 그가 우리 말 즉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해를 많이 입혔다고 이야기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의 피를 흘렸지만 주의 일을하다보면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있다. 깨어 주의하여야 한다. 이런 자들은 어디에나 있음을 기억하며 이러한 자들로 말미암아 낙심하거나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하고 우리는 우리가 돌봐야 할 양 무리에 집중해야 한다. 


5) 바울에게 있어서 주님은 늘 함께 하시고 위로가 되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바울은 오네시보로가 자기에게 위로가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있는가? 함께 하는 것 찾아가는 것 같이 밥 먹는 것 차 한잔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시간과 재정을 떼어 놓고 만나야 할 사람들을 만나고 위로할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힘을 쓰도록 하자. 

 

3. 적용

1) 믿어야 할 것

- 복음을 위해 살더라도 나의 영광이 다 할 때 사람들은 나의 곁을 떠나게 된다.

- 사람들이 떠날지라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을 문안해야 한다.

- 복음을 가로막고 대적하는 자가 있다.

2) 회개할 것

- 하나님의 편에 선 사람들 재정 후원하는 사람들 자주 문안하지 못 하는 것 회개 하자.

3) 간구할 것

- 바울과 같이 평생에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힘쓰는 자가 되자.

- 노방전도에 힘을 쓰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모든 자들에게 복음을 들고 갈 수 있도록

- 대학부 공동체가 전도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 나와 함께 하는 자가 많지 않더라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며 전도자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4) 즉각 실행할 것

- 금요일 일찍 퇴근하여 캠퍼스 전도 참여 하도록 할 것

- 구역팀안에서 마음을 모아 같이 전도할 사람들 모을 것

- 말레이/네팔 등등 흩어진 나그네들 문안할 것

  













2023년 7월 20일 목요일

[One to One] 4과, 예수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1. 도입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죄를 짓고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에 있게 된 우리들은 여러 가지 죄의 증상들로 인해 고통 받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죄는 심판하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이번 챕터에서는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그 분의 말씀과 삶을 통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1) 예수님을 가까이서 본 12제자들, 그 중에서도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은 아끼던 세 제자로 나오는데 이들은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실 때 그리고 변화산에서 영광으로 나타나 실 때 함께 하였던 자들이다. 이들 중 요한이 적은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으로 믿게 하기 위하여 요한 복음을 기록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구원해 줄 메시아로 나타나 있다. 이 그리스도는 창조 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아담이 죄를 범하였을 때부터 여자의 자손으로 마귀와 원수가 될 것임을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구약의 많은 성경들이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실 메시아를 기록하였고, 예수님은 이 예언의 말씀의 응답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2)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부분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본 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 하십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에 자신이 거하며 그 곳에 제자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하려 가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말씀하시는 이유는 그 분이 메시아 이심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 분의 입의 말씀은 참된 진리로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할 만한 능력 있는 진리의 "말씀"이 되십니다. 마지막으로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던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자유케 하실 참 "생명"이 되십니다. 

그 분은 창조때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만물이 그 안에서 창조된 바 된 참 하나님, 참 창조자가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를 부활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을 생명의 떡으로 설명하시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로 설명하십니다. 아담으로 인해 사망의 길을 걷게 된 인류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부활과 참 생명의 길로 걷게 되었습니다. 그 분안에 있을 때 둘 째 사망의 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오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들이시며 구원의 길, 생명의 길 영생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3)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목자에게 돌아간 양은 쉼을 얻고 나음을 얻고 돌봄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부터 나음을 얻고 귀신 들린 자들이 자유케 되며 죽었던 자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안식일에도 이러한 일을 행하셨는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도 인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으나, 예수님은 아버지가 일하시니 자신도 일하신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자신이 행하시는 것임을 말씀하시며 유대인의 안식일에 대한 인식이 잘 못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유대인들은 알지 못 하였고, 정신은 잃어버린 채 껍데기에만 사로잡혀 오히려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으로 내모는 자의 역할만 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깨뜨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참 자유와 회복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3.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자신이 메시아이시며 심판의 주인이신 것을 알리시며 예수님안에 있을 때에 우리에게 참 생명이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심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 믿음 " 입니다. 그래서 이 믿음을 가진 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게 되었고, 믿음이 없는 자들은 예수님을 대적하고 원수로 행하였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님외에 다른 구원의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바로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주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다른 구원의 길이 있고 그것이 가능한 것이었다면 굳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도 이 사실을 잘 아셨기에 아버지의 뜻대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이 보이신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4. 종결부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가 죄로 인해 어떻게 되었는지를 배웠고, 이번 과에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배웠습니다. 주님은 죄에 빠져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에게 참 소망이 되시고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그 분은 지금도 우리들을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 일을 위해 그 분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하나님이 보이신 생명의 길을 걸어가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이제 다음 챕터에서 이 땅에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통해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셨는지에 대해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7월 18일 화요일

[PBS] 디모데후서 4장 1절~8절

 [본문]

(딤후 4:1)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행10:42
(딤후 4: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전4:13
(딤후 4: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1)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전1:10딤후3:1
(딤후 4: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전1:4딤전6:20
(딤후 4:5)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 4:6)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빌1:23벧후1:15
(딤후 4: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 관찰]

1. 문단 나누기
-1문단 : 1~5 - 디모데의 달려 갈 길
-2문단 : 6~8 - 바울의 달려 온 길

2. 문맥 및 분위기
- 전문맥 : 성경을 가까이 하고 경건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라.
- 후문맥 : 바울을 떠나간 자들과 함께하며 힘이 되어준 자들.
- 분위기 : 마지막이 가까움을 아는 바울이 남겨진 디모데에게 복음을 맡은 자로써 충성을 다해 주의 일에 힘쓸 것을 당부함. 

3. 본문 요약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님앞에서 엄히 명하여 말씀을 전파하며 항상 힘쓰며 권하라고 부탁한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떠나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하는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 때에 더욱 신중하여 전도자의 직무를 감당하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은 떠나 시간이 가까와졌음을 얘기하며 자신뿐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들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졌음을 얘기한다. 

4. 본문 관찰
- 엄히 명하노니 : ~앞에서,
   a. 하나님
   b. 그리스도 예수 ->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c.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 사사로운/개인적인 부탁이 아님, 하나님/예수님이 디모데에게 명하시는 것과 같음
- 명하는 내용
   a.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b. (너는 말씀을)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범사에 오래참음과 가르침으로 
       * 경책 : 가볍게 꾸짖다.
       * 경계 : 옳지 않은 일 또는 잘못된 행동이나 생각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다.
       * 권하라 : 권면하다. 
- 때가 이르리니 : 말세의 때, 주님의 임재가 가까이 왔을 때
- 말세의 특징 :
    a.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함
       * 바른 교훈 : 건전한 교훈
    b.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둠. 
       * 귀가 가려워서 : 자신의 간지러운 곳을 긁어줄 사람을 찾음. 
       * 스승을 많이 둠 : 자기의 사욕을 맞다고 해주는 사람들을 찾아 다님.
    c.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 허탄한 : 허황되고 망령됨이고 가능성이 없는 것을 큰 소리로 말하며 또는 허망한 것 => 우상과 관련된 경우가 많이 있음. 
- 그러나 :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쫓지 않고 자기의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 허탄한 선생을 많이 두지만,,,
- 너는~
  a. (모든 일에) 신중하며 : 가볍게 행동하지 아니함.
  b. 고난을 받으며 :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음
  c. 전도자의 일을 하며 : 복음을 전파함.
  d. 네 직무를 다하라 : 교회의 지도자로써
- 전제 : drinking offering, 붓다 따르다 라는 의미로 여러 제사에 포도주를 그 위에 붓는 행위를 의미함.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의 헌신적인 봉사. 관제로도 번역됨. [개역한글판]
- 내가 벌써 부어지고 : 바울이 자신의 삶을 주님께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온전히 드렸음을 믿음의 고백으로 나타냄
-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 바울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자신도 직감하고 있음.  육신의 장막을 벗어나 주님께 나아가야 할 시간이 가까이 왔음. 
- 선한 싸움 :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하여 주님의 편에 서서 법대로 싸워 나감
- 나의 달려 갈 길 : 경주하는 자의 비유. 최선을 다해 전력 질주 해온 바울.
- 믿음을 지켰으니 : 환란과 핍박과 멸시와 천대와 온갖 수모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라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지켜 나감. 
- 이제 후로는 : 바울이 죽고 나서 예수님 앞에 서게 되는 그날 
- 의의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 주님께서 구원 받은 백성들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충성되이 일한 자들에게 주는 것
-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들

[해석]
1. 자신의 죽임이 가까이 왔음을 깨달은 바울은 이제 자신의 뒤를 이어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로 살아가야 할 디모데에게 하나님앞과 그리스도 예수앞과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는데, 그 내용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과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는 것이다. 특히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라고 얘기하고 있다. 디모데가 에베소 교회의 지도자로써 특정 예배 시간과 또 여러 장소에서 가르칠 기회가 있었게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그외의 장소와 시간에서도 ( 때를 못 얻든지) 전파하라고 명하고 있다. 이로 보아 바울의 전도자의 사명과 직분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짐작이 간다. 

2. 바울은 이를 엄히 명하고 있다. 결국 자신이 떠난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가 계속해서 확장되기 위해서는 말씀이 전파되어져야 하고 말씀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지속적으로 일어나야 바울이 떠난 이후에도 하나님 나라가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 또한 바울에게 명히 이 명령을 받은 자들이다. 그 뿐인가 ? 바로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제자들로써 받은 자들이지 아니한가? 우리는 이 명령을 엄히 받았는지 그렇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망자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것 처럼 데모데 또한 바울의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해 엄청 애를 많이 썼을 것이다. 

3.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또한 이 세상으로부터 성도들을 지키는 자의 역할도 함께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경책하며 경계하고 권하는 자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조장으로써 직분자로써 어린자들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마음이 간 자들을 향하여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자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한다. 요즘은 대부분 자기 주장이 강하고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일을 잘 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욱 힘써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하는 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에서 가정에서 이 일을 행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임을 잊지 말고 이 일을 지혜롭게 잘 행할 수 있도록 힘쓰는 자가 되어야 겠다. 

4. 하지만 바른 교훈, 건전한 교훈을 받지 않고 따르지 않고 자신의 사욕을 채워줄 스승을 찾아 자기 귀를 즐겁게 하여 그러한 일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일타 강사를 쫓고 온갖 강연과 세미나를 듣고 재테크 열풍이 불고 오프라인을 뛰어넘어 온라인 강의 까지 동기부여 성공 등등 많이 주제가 우리를 미혹하고 우리를 그곳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냐에 따라 그곳에 돈과 시간을 쓰게 되고 그러한 스승을 두게 되어 있다. 

5. 이들은 결국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게 된다. 허탄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바로 우상을 쫓는다는 것이다. 우상의 이야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러한 일들에 마음을 쏟게 된다. 이방신들을 섬겼던 그 당시 뿐만 아니라 지금도 허탄한 일들에 우상을 섬기는 일들에 우리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가장 큰 것이 부자 되는 것, 돈을 모으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이뻐지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몸짱이 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눈에 보이고 하나님과 상관 없는 일들에 우리의 마음을 다 빼앗기고 있다.

6.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우상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럴 때일 수록 전도자의 직무를 충실히 감당하며, 신중하며, 복음과 함께 고난 받으며 우리의 맡은 바 직분을 잘 감당하여야 한다. 우리는 전도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고 알려주는 자 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도가 캠퍼스 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졸업 이후에도 직장과 노방에서 그리고 관계가운데서 우리는 계속해서 이 전도자의 직무를 깨어 근신함으로 감당하여야 한다. 전도자의 직무를 잘 감당하는 것은 다른 거이 아니다. 전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전도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전도자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전도의 장소와 시간을 정해 놓고 전도하는 것이 전도의 직무를 행하는 것이다.

7.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이 마칠 때 쯤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회한이나 후회를 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마지막이 가까이왔음을 아는 듯한 고백 가운데서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전제와 같이 주님앞에 드려졌음을 고백하며 주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상을 준비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바울이 주님을 만난 이후에 이러한 삶을 살아가지 않았다면 그의 고백이 교만이나 허상뿐인 고백이 될 수 있으나 그의 삶을 아는 많은 성경의 독자들은 그의 고백이 허언이 아님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고백을 하며 죽음의 문 뒤에 서 계신 주님을 만날 것이가?! 바울의 고백처럼 자신 뿐만 아니라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모든 자에게 라는 그 고백처럼 그 바라는 자들에게 나 자신이 포함되어 있기를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래본다. 

[적용]

1. 믿어야 할 것
-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
- 말씀 전파로 인한 사람의 변화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이다.
-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귀를 즐겁게 할 거짓 선생을 많이 두게 될 것이다.
- 이 세대의 특징이 듣지 않는 것일 지라도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해야 한다. 
-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깨닫게 된다.
- 우리 주님은 이 땅에서 수고한 주의 백성들을 그 곳에서 영접하시며 칭찬하신다.

2. 회개할 것
- 이 세대의 특정이라 단정 짓고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주저한 것. 
- 전제일지라도 온전히 부어져야 하는데, 메인이 아니라고 온전히 헌신하려 하지 아니한 나 중심의 생각과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들 회개

3. 감사 찬양 할 것
- 말씀에 대한 열심을 주셔서 PBS와 통독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감사
- 허탄한 것을 쫓아 살아가는 이 세대 중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말씀이 기준이 된 삶 살아가게 하심에 감사

4. 간구할 것
- 바울처럼 삶의 마지막 끝자락에 전심전력 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 말씀을 전파하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자녀들 주변인들 그리고 노방에서 만나는 자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로 살아 갈 수 있기를

5. 즉각 실행할 것
- 가족 성경 봉독 중 주요 구절 말씀 카드로 가족 카톡방 공유
- 자녀들 휴대폰 거실 충전기에 꽂아 놓도록 견책하고 경계할 것.
- 원투원 정리 후 제자반 강의 정리할 것.

2023년 7월 13일 목요일

[One to One] 3과, 죄의 결과는 어떤 것들인가?

 1. 도입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심판하신 이유가 바로 죄 때문이란 것을 지난 과에서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나타나는 증상, 즉 죄의 결과는 무엇인지 이번 과에서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2. 죄의 결과

1) 악을 행함

정의와 공평이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바로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달은 스스로 빛을 낼 수 없고 태양의 빛을 반사하여 빛 날 수 있는데, 만약 태양 빛이 비치지 않는다면 달은 암흑으로 가득찰 수 밖에 없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떠난 인간 또한 선함을 흉내내고 따라할 수는 있지만 그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난 첫 번째 악은 바로 하나님을 피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아담은 하와를 비방하고 하와는 뱀을 비방합니다. 이들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아 아담을 일하여야 했으며, 하와는 임신하여 출산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마귀의 자식은 여자의 자식과 원수가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보는 것 처럼 동생인 아벨을 가인이 죽이는 첫 살인 사건이 가인의 시기와 질투로 인해 발생하게 됩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악한 시선, 모독, 교만, 어리석음 과 같은 악을 행하고 그 행함이 갈 수록 심해 지고 끝을 볼 때까지 멈추지 않게 되었습니다.

2) 나는 어떠한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뉴스에서나 접하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법적으로 전과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기독교에서 말하는 죄인으로 규정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자신을 굉장히 선한 일을 행하기도 하는 꽤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죄인에 대한 정의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살인하지 않았어도 죽이고자 할 만큼 미워한 적이 있으며, 사기를 치지 않았어도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한 적이 있으며, 탐심을 이기지 못 해 도둑질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을 베푸는 착한 일을 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은 죄악들이 착한일을 한다고 해서 사라질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어떤 연쇄 살인마는 자신이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해 상황이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며,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으로 상황만 나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행하지 않았을 거라 합니다. 그가 죽인 사람들이 그가 이후에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되살아 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혹은 당신은 당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죄의 대가를 지불한 적이 있나요? 그런 적도 없을 뿐더러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를 겁니다. 기억하고 있던 그렇지 않던 죄에 대한 대가 지불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일 것입니다. 

3) 죄의 상태- 더러움

죄를 지으면 정결한 상태 거룩한 상태와 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한 마디로 더럽혀 집니다. 갓난 아이가 똥을 누면 그 부모가 더럽기 때문에 아기를 씻기는 것처럼 우리는 정결케 하기 위해 다른 에너지가 들여야 하는 상태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미 더렵혀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깨끗게 할 능력이 없습니다. 

내적인 문제가 아닌 외적인 몸을 예를 들어도 한 명의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자신을 깨끗게 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의 양은 대략 500톤 정도라고 합니다. 외부로 보여서 씻는 몸도 이러할 진데 보이지 않는 내면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사 제도를 도입해서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는데 이는 동물에게 죄를 안수하고 죄를 범한 자를 대신하여 죽임으로써 죄를 속하여 주는 제도 였다. 죄를 깨끗게 하기 위해 대가가 필요하며, 그 대가는 실로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죽임을 당하였어야 했을지 이루 미루어 짐작할 만 하다. 

4)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으심으로,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 내신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 심판하신다. 왜냐하면 그 분은 정의와 공평을 그 통치의 기초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악한 지도자들은 불의와 타협하고 죄를 심판하지 않으므로 선량한 백성들의 고통을 키우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그렇지 않고 불의한 자의 죄를 끝까지 갚으시고 그 죄악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또 한 사랑을 그 통치의 기초를 두고 있으시기도 하기 때문에 때때로 그 백성을 내어 버려 두심으로 심판하시는 경우도 있으시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죄와 불의한 자들과 함께 결코 있을 수 없으며, 맹령한 진노로 그 죄와 불의한 자들을 불사를 뿐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죄를 싫어하시고 죄를 심판하심에도 불구하고 왜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심판하지 않으실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심판을 더디 하시는데 그 이유는 한 영혼이라도 더 지옥 자식으로 만들지 않고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지금 심판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하나님앞에 설 자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마지막 심판의 날 예수님은 공의로운 재판관으로 오실 것이며, 어린 양의 피로 죄씻음을 받은 자들을 그 오른편에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최후 심판을 받아 지옥 갈 자들을 그 왼편에 모으실 것이다. 

5)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끼친 영향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을 만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 사이를 갈라 놓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과 지혜와 능력으로 하나님께 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범죄하기 전 아담은 하나님과 대면하여 대화하고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던 관계였으나, 범죄한 이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 나게 되고 그 이후에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게 됩니다. 이후로 인류는 직접 하나님을 볼 수도 만날 수도 없게 되었고,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인류는 하나님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많은 철학과 종교를 발달 시키고 그리고 하나님없이 살고자 하는 노력으로 과학의 발전을 이룩했지만, 여전히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그 빈 자리를 채우지 못 한 채 인생의 공허함으로 인해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6) 죄의 결과 사망

어항에서 빠져 나온 붕어가 말라 죽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죽음에 이룰 수 밖에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법입니다. 원래 영생을 누려야 할 아담이었지만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영생에 이르는 생명수 나무 실과를 먹지 못 하게 되었고 꽤나 오래 살았지만 아담은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도 이러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고, 인류는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육신의 죽음 뿐만 아니라, 영혼의 죽음까지 피할 수 없게 되었으며 둘 째 사망의 해를 육신의 죽임이후에 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둘 째 사망입니다. 

7)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창조이후 인간의 범조함이후에도 인간을 사랑하지 않으신 적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쫓겨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주셨고, 살인한 가인에게 그를 보호할 명패를 주셨으며, 불순종한 이스라엘에게 놋뱀을 주셨고,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제사 제도를 통해 죄를 문제 해결의 모형을 보이신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우리 죄에 대한 대속물로 내어 주심으로 단 번에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모든 인류의 죄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속죄함의 길을 얻게 되었고 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용서함받고 용납되어져 양자의 권리와 권한을 얻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우리의 반응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악에 빠진 우리를 건질 방안을 완전히 수립하셨습니다. 바다에 빠진 자들에게 구명 보트를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손을 내밀어 그 배에 올라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우리가 바다에 빠져 있다는 사실(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이외에 다른 구원의 방법이 없음을 시인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회개와 영접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야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종결부

죄의 결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죽게 하심으로 우리가 죄 용서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음을 성경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2000년전에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가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길로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님만이 참된 구원의 길이며 다른 구원의 길이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음장에서는 하나님이 우리는 위해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7월 11일 화요일

[One to One] 2과, 죄란 무엇인가?

 1. 도입부

 1과에서 하나님은 정의롭고 공평하신 분으로 배웠습니다. 그 분은 거룩하시며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사랑을 느끼지 못 하고 누리지 못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안에 죄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죄란 무엇이고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1) 창조자와 피조물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여섯 째 날에 마지막으로 모든 만물을 다스릴 사람을 창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근본 태도가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것임을 알 수 있고 또 한 피조물로써 아무것도 안 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만물을 다리시는 권한과 책임을 우리에게 부여하여 주셨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는 그 분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가 된 것입니다.

2) 대리 통치자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나님의 작품이고 하나님께 속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이 모든 피조물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고, 피조물은 인간의 다스림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첫 번째 명령인 땅에 충만을 명하셨고,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와 능력들을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만물의 영장]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세상 그대로 인류가 만물을 잘 통치하고 하나님과 계속적인 사랑안에서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3) 관계의 파괴

이런 하나님의 기대와는 다르게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과 그 피조 세계를 바라보시며 하나님은 그들을 지으신 것을 후회(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 하나님은 후회가 없으심)하시고, 물의 심판으로 다 쓸어버리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람의 모든 생각이 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 모든 계획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바벨론 사건이 있으며,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싫어하여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하여 바벨 탑을 쌓아 하늘에 까지 닿고자 하였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죄'과 세상 가운데 만연하였기 때문인데 구체적으로 죄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 죄란 무엇인가?

1) 원죄

처음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너무 좋았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에덴 동산에 머무르며 피조 세계를 돌보고 그 이름을 짓는 모습은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성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아담의 홀로 지내는 것을 좋게 보지 않으시고 그를 위해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만드신 여자가 아담을 꾀어 동산 과실중 먹지 말라고 명하신 선악과를 같이 먹게 함으로 하나님께 불순종 하게 되어 죄를 범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담이 범한 원죄인 것이다. 

2) 불순종

어떤 나무의 실과를 따 먹느냐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하신 실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실로 하나님과 같이 될 만한 능력이 있어 보일지라도 나를 지으신 이가 먹지 말라고 명하셨다면 먹지 말아야 하는 것이 피조물에게 있어야 할 순종의 자세인 것입니다. 순종은 우리에게 있어 계속해서 하나님안에 거하게 하는 보호 장치와도 같은 것입니다. 불순종은 곧 하나님이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혹은 다른 존재가 있게 하는 것이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지 못 한 채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3) 마귀- 거짓의 아비

하와를 속여서 선악과를 먹게 한 존재가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뱀을 통해 하와에게 역사한 사단 마귀입니다. 그는 거짓의 아비인 만큼 하나님이 아담에게 한 말을 교묘히 거짓으로 속이는 질문으로 하와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마귀의 말에 넘어간 하와는 그 과일을 보았을 때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자신을 하나님과 같이 할 정도로 탐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와와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단의 말을 믿고 행함으로 말미암아 죽음 사단은 말로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은 거짓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코 죽으리라 하였지만 사단은 오히려 죽지 않고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하와를 속입니다. 여기에는 마귀가 원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이 피조물로부터 받아야 할 모든 영광을 부러워하여 자신이 그 영광을 받기를 원했고,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말을 듣게 함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통치 아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마귀 또한 하나님앞에는 피조물과 그 천사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은 이러한 마귀의 궤계를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을 내어 주심으로 그 영광을 되찾아 오십니다. 

4) 죄의 정의

정리해서 보면 죄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행위를 뜻하며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죄와 죄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들은 구별되어져야 하며, 죄의 결과는 다음 과에서 좀 더 상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죄는 우리가 단순히 범법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창조자 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4. 결론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존재였지만 죄가 들어온 이래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로우신 분이셔서 죄를 간과할 수 없고 죄를 심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로 심판하시고 노아를 통해 이 땅에 의로운 자의 계보를 잇게 하십니다. 선악과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죄는 바로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불순종을 의미하며 이 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에서 쫓겨나 사망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다음 챕터에서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나 있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죄의 증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7월 10일 월요일

[One to One] 1과, 하나님은 누구신가?

1. 도입 질문 

- 당신은 무신론자 입니까? 아니면 유신론자 입니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신론과 무신론 모두 믿음의 문제, 하지만 불신자들 대부분 유신론은 비과학적이고 무신론은 과학적이라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둘 도 모두 믿음의 영역에서 발휘되는 것이다. 신이 없다고 믿거나 신이 있다고 믿거나. 중요한 것은 그 믿음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 만약 정말로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 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피조물의 세계를 통해 창조자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생명체의 설계도와 같은 DNA가 존재하는 것과 온 우주 만물가운데 아직까지 다른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 한 것 그리고 위험한(?) 우주 한 가운데 지구라는 별에 생명체가 살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성을 가지고 있는 인류가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창조자가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들은 어렴풋하고 우리의 주관적인 해석과 관찰자의 오류등에 의해 왜곡되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창조 이후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계시를 통해 주신 말씀으로 수 천년에 걸쳐 여러 저자들에 의해 작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에 대해 서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기도의 응답을 통해 그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기도의 대상과 기도의 내용이 존재하는데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따라서 그 기도가 응답되어 진다는 것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일하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정말로 없다면 우리의 기도는 정신 승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되겠지요.   


- 성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과연 믿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어 지고, 구약 39권 신약 27권으로 전체 66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저자 또한 시대 별로 다양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고, 시간 상으로는 창조부터 종말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이 성경이 역사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쓰여진 책인 것을 인정하고 있으며, 고대 문헌들과 비교해도 유사한 시대적 상황들을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성경을 통해 살펴 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1) 통치자 : 시편 97편 1절을 통해 그 분이 온 땅과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의 통치를 만물이 기뻐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그가 창조하신 세계를 사랑하고 좋게 여기시고 그 모둔 필요한 것을 아시고 넉넉히 채워주시고 공급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불신자들이 이러한 내용을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인데 왜 이 세상이 이 모양인지 불만을 토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인 계신데 왜? 라는 질문으로 꼬리를 물며 이 세상에 가득한 불의와 고통 그리고 죽음에 대해 못 마땅해 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잘 못이고 그 분의 부재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번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잘 못인지 혹은 인간의 잘 못은 없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성경에서 언급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신데, 왜 굶어서 죽는 사람이 생길까요? 하나님이 안 주셔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분배의 문제가 결부 되어 있고 이 분배의 문제의 배후에는 인간의 탐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좋은 것은 나의 의로 여기고 나쁜 것은 하나님의 잘못으로 여기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만약 무신론자들의 주장대로 이 세상의 불의와 불평이 하나님으로부터 초래된 것이라면 어떻게 지구에 사는 인류는 오늘도 안녕을 누리고 있을까요? 온 우주를 창조하신 그 분이 지구라는 별 하나 순삭시키는 것은 정말로 단순한 일 일텐데 말이죠. 오늘도 여전히 그분은 비를 내려 주시고 땅에서 양식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따라서 여전히 그분은 그 피조 세계를 사랑하고 계시고 인간이 그것을 받아 들이던 그렇지 않던 통치 하시고 운행해 나가시고 계십니다. 

2) 의와 공평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의로우실 뿐만 아니라 공평하신 분이시다. 앞서 그분은 통치자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 통치자의 통치 방식이 정의와 공평에 기초를 두고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행복하고 기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에 불의와 죄를 그냥 넘기시지 않으시고 그에 맞는 형벌을 내리시는 공의로운 재판관이시다. 그리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으시고 잘 못 판단하시지 않으시는 공평한 재판관이시다. 부유하다고 해서 그들에게 이로운 판단을 내리시지 않으시고 가난하다고 하여 그들의 편에서서 판단하시지도 않으신다. 그런데 세상은 왜 이토록 불의하고 불공평한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지 않기 때문인데,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마귀 즉 사탄에게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닌 마귀의 통치아래 죄의 권세아래 온 인류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4과 죄란 무언인가? 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3) 모든 신들위에 뛰어나신 분

사실 이러한 부분들은 사람들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부분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사실 다른 신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인간들이 하나님이 있어야 할 위치에 다른 것들을 둠으로써 우상으로 섬기는 일 즉 만들어진 신이 있을 뿐, 실제로 다른 신들이 존재하여 하나님과 다투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다른 신들을 짓밟고 군림하시며 모든 신들중에 뛰어나신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런 부분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외에 다른 신들을 하나님의 위치에 두는 것을 싫어하시는 질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성경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님과 맺은 언약, 혹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시고 이방 신들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진노하시고 혹은 질투하시는 모습을 나타내고 계시다. 그 만큰 사랑하시고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그 분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4) 모든 것을 아시는 분

시편 139편에서는 하나님을 모든 것을 아시는 분으로 찬양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행동],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며[생각],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심[나의 모든 행위], 내 혀의 말[내가 하는 말], 앞뒤를 둘러싸시고 안수하심[보호자가 되시고 소유로 확정하심]. 나의 인생의 여정을 아시고 나의 행위와 생각과 내 입의 말들... 그리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그는 관찰하시며 살피시는 분이시며 머리카락까지 세시는 분으로 묘사되어질 만큼 우리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다. 팬들이 아이돌을 좋아할 때 그 좋아하는 대상의 세세한 정보에까지 아는 것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 잘 아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알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를 살피시고 눈동자같이 보호하고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5) 모든 곳에 계시는 분

하나님을 피해 숨을 곳은 없다. 왜냐하면 그 분은 어디에도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감찰 하시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처럼 육신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니라 영으로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가운데 존재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그 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우리가 기쁨 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기쁨을 아시고 우리가 죄악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의 죄를 다 알고 계신 분이시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주의 낯을 피하여 숨을 수 없고, 마지막 심판날에도 모든 인류가 주를 보게 될 것이다. 

6)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성경에서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후 심히 보기 좋았더라고 설명하고 있다. 달리 설명하면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피조 세계를 사랑하신 것이다. 이 사랑은 완전한 사랑으로 인간 세계에 잘 적용되는 이해 타산적 이거나 주고 받는 관계 중심의 사랑이 아니다. 그 분은 그 분 자체로 완전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거나 하실 필요가 없는 분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기에 우리와 교제 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더 깊은 사랑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다. 그 첫 번째 단추가 바로 순종이다. 순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과 축복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다. 하지만 현생 인류 대부분은 이 사랑을 알지 못 하고 느끼지 못 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분의 사랑안에 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출한 자녀가 집안에 있을 때 받는 따뜻한 사람과 채움을 경험할 수 없는 것처럼 인류는 하나님을 떠나 독자 생존의 노선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 사랑의 확증

인류의 불순종과 타락 이후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으시고 하나님은 인류가 이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그 사랑을 결코 내려 놓으신 적이 없으시다. 이는 단순히 말로나 감정으로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 나타난 사건을 통해서 그 분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그 사건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사건이다. 그 분은 이 땅에 성령으로 성육신하시고, 무죄하시지만 인류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 권세를 멸하시고 우리에게 부활과 영생의 길을 열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창조 이후부터 하나님이 계획하셨으며, 성자 하나님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역사적 사건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확장되고 있으며 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그 분의 사랑과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8) 당신은 현재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나요?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우리를 향해 프로포즈 하셨습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받아 들임으로써 우리는 그 분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우리의 영적 아버지를 두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길에 들어서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내주 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그 분의 사랑 안에 거 할 때 우리는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믿지 않고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이전과 같이 내 삶의 주인이 내가  되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는 둘 째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둘 째 사망은 우리의 육신의 사망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 이후에 우리의 모든 행위를 주님께 아뢰며 심판을 받게 되어 우리 죄와 그에 대한 결과로 둘 째 사망의 해를 받고 영원한 지옥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라고 얘기하셨고, 죄용서함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 우리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심으로 누구든지 믿고 나아오면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 죄를 않고 죽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결론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며, 그 통치의 기초가 정의와 공평이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어디에도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 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은 오늘도 우리를 구원의 길로 초대하고 계시며 우리를 천국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분의 부르심 앞에 이제 당신이 선택해야 할 순간입니다. 

다음 장에서는 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23년 7월 5일 수요일